전라도는 따뜻한 말씨와 느긋한 생활 리듬이 살아 있는 지역입니다.
그 속에서도 ‘시장’은 지역 사람들의 삶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공간이었습니다.
시장 골목을 따라 펼쳐진 다양한 직업들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서,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자 문화를 이어가는 핵심이었죠.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변화했지만,
그곳엔 여전히 시간의 냄새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라도 재래시장 속에서 활동하던 전통 직업인들의 모습과
그들이 남긴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전라도 시장 골목에서 만난 삶의 기술자들
과거 전주의 남부시장, 광주의 양동시장, 여수의 서시장 등
전라도 곳곳의 재래시장에는 ‘손기술’로 먹고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짚으로 바구니를 엮던 장인,
무명천을 짜던 베틀 장인, 방짜유기를 만들던 유기장,
전통 한지로 부채를 만들던 부채 장인이 대표적이었지요.
특히 전라도 특유의 정이 담긴 음식 장사꾼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장 통로에서 국밥 한 그릇, 어묵 한 꼬치를 팔던 상인들,
간장게장과 홍어를 손질하며 손님에게 직접 먹는 법을 설명해 주던 아주머니들.
그들은 단순히 ‘파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공간을 ‘정감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던 주인공이었습니다.
노동이 곧 문화였던 시간
전라도 재래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직업들은
단순한 거래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지금처럼 포장된 물건을 사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골라보고, 가격을 흥정하고,
그 과정에서 눈빛과 말씨로 마음을 나누던 일이 함께 있었죠.
예를 들어, 시장에서는 신발을 깁는 수선공,
숟가락을 납땜하던 대장장이,
손수 만든 매듭으로 장신구를 만드는 매듭장이 활동했습니다.
그들은 땀이 묻은 손으로 한 땀 한 땀 작업을 이어갔고,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주문 없이도 ‘그 사람 스타일’을 알아채는 기술도 가졌습니다.
이처럼 노동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알아보고 연결하던 소통의 매개였던 셈입니다.
남겨진 공간과 사라진 이름들
지금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이 시장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래시장에 남은 몇몇 가게는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수선용 철물, 오래된 저울, 손때 묻은 나무판 진열대.
이런 공간들은 시간이 쌓인 장소이자,
잊혀진 이름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이런 전통 직업을 문화재로 지정하거나,
체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물리적 보존만이 아니라,
그 일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손길을 함께 담아내는 것이겠지요.
전라도 재래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지역민의 정서, 기술, 기억이 축적된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일하던 이름 없는 장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전통과 맛, 그리고 이야기들이 가능해졌습니다.